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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13 삼양라면 다시 한 번 더.... 3

삼양라면 다시 한 번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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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디피아에도 검색되는 내용인데...
권리침해 신고가 들어와서.... 타 기업명은 싹 빼고 삼양기업 관련 내용만 올립니다.


프롤로그 : 

저는 그저 아고라를 이용하는 유저이기 때문에 무조건 특정 기업을 까는 사람이 아닙니다.  특정 기업을 깔 생각도 없습니다.

또, 남들이 움직이면 똑같이 쉽게 따라 움직이는 부화뇌동하는 사람도 아니지요.  인터넷에서 신문기사 등 오랜시간 걸려서 검색해 보고,

그에 근거해 가치판단을 내리며, 더더군다나 경험을 통해 어떤것이 좋은지 안 좋은지..  몸의 생리작용을 통해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생리작용 이냐구요? 비교해서 드셔보시면 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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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중반...
세상에 한국보다 더 배고픈 나라는 없었다.
오죽하면 그 당시에 북한이 남한보다 더 잘살았었으니까...

한국의 기아 문제는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이제는 개인의 자급이나 구호는 물론, 국가 정책으로도 서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보다못한 삼양식품 전중용 사장은 결국 기업 차원에서 한국민의 배고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의 '묘조라면' 사장을 회장이 직접 찾아가 궁핍한 한국의 식생활을 호소하며 기술 이전을 부탁했다.
물론 거절 당했고...... 회장의 수개월에 걸친 호소에 결국 감동한 '묘조라면'사장은 노하우 전부를 이전해주었다.


삼양식품은 묘조라면의 기술을 이전받아 삼양라면이라는 라면회사를 설립한 후 당시 한국인들에게 가장 부족했던 단백질 보충을 위해 소고기를 원료료 한 스프로 국물을 만들고...
꼬들꼬들한 면을 만들기 위해...
일본에서 쓰던 식물성 저가 팜유가 아닌...
값 비싼 소 우지로 면을 튀겼다.

당시 식물성 팜유를 쓰던 일본조차 원가 상승 때문에 시도하지 못했던 이 우지는......
미국 패스트푸드점이나 식당에서 사용하던 고급 기름이다.

물론 가정용이나 고급 식당에서 팔리던 1등급 우지보다는 낮은 등급이었지만, 그건 소고기의 등급에 따른 문제였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게 그 유명한 삼양라면...
대한민국 최초의 라면이었다.
이 라면은...
허기진 서민들과 배고픈 어린이들, 그리고 끼니 챙기기 힘든 노동자들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었고, 심지어 해외에 수출되어 외국의 배고픈 문제와 국가경제에 매우 큰 기여를 했다.


박정희 대통령조차 삼양식품의 인간존중 경영책을 보고 배웠다는 일화는 참 유명하다.
박정희가 유일하게 믿고 세무조사를 하지 않았던 기업은 유한양행과 삼양라면 뿐이었다.

지금도 그런 인간중심의 인사정책은 아직까지 적용되고 있다.
국민 영양을 위해 고가 원료인 소고기 재료만 고수하고, 서민들 주머니 사정 때문에 너무나 저가에 팔았기 때문에 삼양라면은 5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절대 가격을 올리지 않았고, 당시 라면 한 그릇은 10원 이었던 점......


삼양의 재정이 5년후 흑자로 돌아서고 시장이 커지자 여러업체들이 라면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가격과 품질면에서 게임이 되지 않았다.

삼양과 동등한 원료로 같은 가격의 라면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그러면서도 흑자를 보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삼양은 이윤이 아닌 서민의 배고픔 해결을 1순위로 삼았기 때문이다.

삼양식품의 저가가격에 다들 가격도 못올려보고 적자로 허덕이다 사업을 접은 이유가 그것이며, 무엇보다 출발점 부터가 달라 맛도 삼양라면을 따라갈 수 없었다.

삼양라면은 그렇게 이 나라의 대표 인스턴트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80년대 말......

라면에도 다양성과 고급화를 바라는 소리가 나오고...
빙그레, 야쿠르트, 오뚜기까지 라면 사업에 뒤늦게 합류했고 심지어 전두환 영부인 이순자 여사까지도 '청보식품'이라는 라면회사를 만들었다.

시장이 다양해지고 배고픔마자 잊은 국민들은 이제 서서히 순하고 담백한 맛의 삼양 라면 맛에 싫증내기 시작했고, MSG를 통해 조금더 맛이 강한 맛을 내는 라면을 찾기 시작했다.
라면시장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결국 삼양라면은 시장 점유율 40 퍼센트까지 내려앉았다.

하지만 시련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삼양라면이 20년간 써온 2등급 소고기 우지가 노태우 정권 시절 '공업용 우지'로 보건사회부에 의해 검찰에 고발된 것이었다.
문제의 공업용 우지는 미국 고급 식당이나 가정, 패스트푸드점에서 사용하는 2등급 고가 우지였지만......

모든 언론사들은 이것을 마치 폐기물로 쓰는 쓰레기 오일로 보도하였고, 결국 라면 시장 대부분을 차지하던 삼양라면은 이 시건 직후 5 퍼센트까지 매출이 감소하고, 80년대 당시 4000 여억원의 손실을 입게 되었다.

게다가 직원 80 퍼센트가 실직... 160만 박스의 라면을 폐기 처분하였다.

결국 라면 시장은 경쟁 기업들에게 전부 내주고... 마가린과 쇼트닝 회사마저 타기업에게 내주게 된다.

그로부터 5 년후...
식용우지가 고급기름이고, 미국가정에서도 쓰이기 때문에 무해하다는 법원 판결이 났지만...

삼양라면은 이미 피범벅으로 식물인간이 된 상황이었고, 그 기사조차 언론에서는 잘 언급이 되지 않았다.

우지 파동때는 앞 다투어 1면에 선정성 기사를 내걸고, 무혐의가 드러나자 꼭 보도할 의무는 없다며 외면한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삼양라면 하면 떠오르는게 공업용 우지다.

언론이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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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나도 삼양라면 먹기 전에 삼양하면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른게 공업용 우지였다. (인터넷이 발달하기전 접할 수 있는 매체라고는 여론몰이 조중동 언론 뿐이니...)

설사 더 이상 공업용 우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비양심적인 기업이니 사먹지 말자는 주의였다. 

하지만 그 공업용 우지가 우리 관념속에 있는 그런 기름이 아니란걸 깨닫고,

더더군다나 67년 당시 창업주 전중용 사장이 남대문을 걷다가 꿀꿀이 죽이라도 얻어 먹으려고 기다리던 가난한 아이들을 보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 한참동안 눈물을 흘린 후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그 잘 나가던 제일생명을 팔고 그 돈으로 일본에 구걸하여 기술을 이전받아 만든 '인간애'를 기업의 가장 중심에 둔 기업임을 알게 되고나서부터는 삼양이라는 기업이 어느 순간 내 마음에 자리잡아 버렸다.

삼양라면.. 또 다시 우지파동과 비슷한 사건이 일어 난다면 그때는 언론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끝까지 신뢰하겠습니다.

민족기업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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