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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14 바다 위에 우뚝 솟은 기적, 몽생미쉘 [Mont Saint-Michel] 4

바다 위에 우뚝 솟은 기적, 몽생미쉘 [Mont Saint-Mich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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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난 파리를 떠나 브리타니-노르망디 지방으로 간다.
유럽에서 러시아, 우크라이나를 제외하고 가장 큰 나라 프랑스는 생긴것도 육각형으로 생겨서 파리에서 어딜가든 시간이 꽤나 걸린다.
저녁 6시에 출발해서 딱 저녁 9시쯤 생말로에 도착을 했는데 버스가 끊기네...... (뭐냐 이건.. 아무리 중소도시라지만 이건 좀 심하잖아...)
이런~~ 그래서 역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전화기좀 빌려줄 수 있냐고 물어보니 나한테  숙소가 어디있는지 묻고는 마침 자기가 퇴근할 시간이니 자기 차로 태워주겠단다.
안전을 생각해야겠지만 덩치를 보니 나보단 얘가 날 더 신경써야 할 처지인것 같아 큰 의심을 하지 않고 차에 탔다.
차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날 목적지에 안전하게 데려다주네. 친절이 고마워 내가 같이 사진찍어서 이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하니 흔쾌히 응해주기도 하고...

근데 여행 끝나고 메일 주소대로 보내니 자꾸 반송이 된다, 아마 잘못된 주소를 알려준듯... ㅜ.ㅜ
프랑스 청년 Flaveio... 내가 이메일 보내준다고 했는데 안 보내줬으니(사실은 전송실패) 까딱하다가는 한국인 이미지를 금가게 할 수 있겠다. 페이스북에서라도 뒤져서 찾아봐야지......
근데 어두운 차안에서 셀카찍다보니 거리조절이 안돼 찍고보니 엄청난 얼굴압박.....  내 자신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첨이군... -_-;;
여튼 느낀거지만.. 프랑스인들은 영국인보다는 확실히 친절하거나 경계심이 덜한것 같다.

그리고 도착한 호스텔.. 대략 하룻밤에 15.5유로...
아침제공에 한국집 민박보다 훨씬 깨끗하고 편리한 시설.. 한방에 3인만 수용.. 침대위에 개인용 전등까지...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이불시트를 새로운 손님이 올 때마다 교체... (가끔씩 이게 잘 안되는 민박집이 있다.)
휴게실에는 플레이 스테이션에 바까지 갖춘 호텔같은 호스텔...
한국인 민박과 비교해서 물론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돈 절약하는데는 호스텔이 최고인것 같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일찍 몽생미쉘로 향했다. 생말로에서 몽생미쉘로 직행하는 버스는 없고, Pontorson까지 간 후 거기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차비는 생말로-퐁토송 3.2유로, 퐁토송-몽생미쉘 2.2유로... 차비는 그리 비싸지 않으나 아쉬운점은 하루에 한 대만 운영한다는것..
더더군다나 몽생미쉘에서 퐁토송행 막차는 오후 3시. 
버스 놓치면 그냥 몽생미쉘에서 미아가 되는거다.
잔뜩이나 기대를 해서 버스 제일 앞자리에 앉아 언제 등장하나... 계속 주시하고 있는데... 드디어 모습이 드러난다.

날씨가 흐리니 무슨 기암성 같은 분위기를 풍기네......

몽생미쉘의 프랑스어 'Mont'은 우리 말로 '산'이라는 뜻... 그래서 성(聖) 미카엘의 산...
뭔지 모를 아늑한 몽환적인 분위기...... 흐린 날씨이지만 이런 모습은 나름 괜찮은것 같다. 흐린날씨만의 매력이랄까......?

버스 안에서 바라본 몽생미쉘...

이 둑길이 대략 1.8km 정도 되는데, 옛날 수도사들이 여기 성지순례를 올때는 이런 뚝길도 없었고 물때를 잘 몰라 밀물에 익사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하였다고 한다.

점점 다가올수록 내 가슴도 두근거려 진다. 처음 여행 계획을 짤때 몽생미쉘은 계획에 넣지 않았다가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 다큐를 본 후 가기로 결정을 한곳이다. 바다 한가운데 있는 사원의 위치와 규모, 건축계기가 내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이다.
건축계기는 서기 708년 Avranche의 대주교 오베르(Aubert)의 꿈에 대천사 미카엘이 나타나 이곳 바위섬에 사원을 지으라고 명령을 해서 지어진 사원이다. 8세기부터 16세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수시로 보수공사... 거의 1000년에 걸쳐 지어졌다고 한다.
대주교 오베르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말 안듣고 버티다가 결국에는 꿈속에서 미카엘이 손가락으로 오베르 두개골에 구멍을 뚫었고 고통에 겨웠던 오베르는 그때 정신차리고 사원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 구멍 뚫린 오베르의 두개골은 몽생미쉘이 아닌 Saint-Gervais 성당에서 보관중이다.

                                                 (사진출처 : 위키디피아)


버스에서 내리면 멀리서 바라 봤을때의 신비로운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저렇게 조그만 출입구를 통해 입장을 하게 되는데 바로 여기 출입구 왼쪽에 관광 사무소가 있으니 여기서 지도와 간단한 설명이 있는 브로셔를 득템(?)하면 관람에 많은 도움이 된다.

퐁또송에서 부터 같이 타고온.. 그리고 파리로 가는 기차에서도 같은 칸에서 정말 우연히 만났던 대만인 신혼부부. 차비 지불하고 수첩꺼내서 지출내용을 기록하고 있으니 대뜸 You are Korean~ 그러네..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 한글을 보고 알았단다.


여기는 사원만 있는게 아니라 밑에는 마을이 구성되어 있다.

기념품 상점뿐만 아니라 호텔 간판 까지도 있더라... 내가 갔을때는 추운 겨울이라 호텔은 문을 닫았었지만...

그리고 이곳의 유명한 특산물...몽생미쉘 과자도 있다. 갑자기 뜬금없이 몽쉘통통이 떠오르는군... -_-; 그거 요즘도 파나요?

이지역에 사는 풀라드라는 아줌마가 오믈렛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대접한 것에서 유래한 과자이다.

그래도 이곳까지 왔는데 이지역 특산물은 한 번 먹어봐야지...
양철박스에 저런 과자가 2봉지 들어있다. 사실 좀 과대포장이긴 하지만, 별것 아닌 과자조각이 또 하나의 추억을 선사해준다.

맛은 달콤하고 고소한데, 버터를 이용해서 만든 과자인듯......  그리고 한가운데는 몽생미쉘을 상징하는 문양이 찍혀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마을을 금방 다 지나고 사원이 등장한다.
사원에 들어가기전 출입구 앞에 몽생미쉘 박물관이 있으나 내가 갔을때는 휴관중이었다. 아쉽게도.... (역시 추운 겨울에 온 탓인가?)
밑에서 봤을때는 언제 다 올라가나? 싶지만 걸어가다보면 금방 아래 전망이 한눈에 보이는 난간에 서게 된다.
이렇게...... 지금은 물이 빠졌을때의 모습인데, 밀물이 들어차면 저기 주차장은 물에 다 잠긴다고 한다.
세계적으로도 조수간만차가 가장 큰 지역이라고 설명이 되어있네.

1897년 신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첨탑. 제일 꼭대기는 대천사장 미카엘로 장식되어 있다.
여기서는 안 보이지만 실제 칼을 들고 있는 미카엘 천사상이 우뚝 서있다. 중세시대에는 최후의 심판날 인간의 영혼을 거두어 어디로 갈지(천국/지옥) 심판하는 천사라고 믿어졌다고 하네... 그래서 두려움의 존재이기도 했으며, 이 천사를 묘사한 그림을 보면 실제로 항상 칼과 저울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게 많다.
이런 미카엘 천사 장식은 492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그 후 차차 유럽으로 퍼졌다고 한다.
특히 16-17세기 반 종교개혁(가톨릭 내부 개혁) 당시 악마와 싸워 물리치는 이 천사의 이미지 때문에 개신교에 대항하고자 이 천사의 조각이 많이 확산되기도...

사원 안으로 들어가면 또다시 안내소가 나오는데, 이곳에 이 사원이 지어진 과정을 설명하는 모형이 있다.


Emmanuel Fremiet에 의해 1897년 만들어진 대천사상... 번개 맞아 손상되어 1987년에 복원되는 모습을 모델로 꾸민 모습.
이 거대한 동상을 19세기에는 헬기 없이 어떻게 얹어 놓았던 걸까?


딱딱한 돌만 쌓아서 무미건조하게만 지은 사원은 아니다. 이렇게 정원같은 곳을 꾸며놓기도.... 우후... 바다로부터 대략 80m 높이에 있는 정원.


서쪽 테라스에서 바다를 바라본 모습이다. 너무 아득해서 잘 보이지도 않는 저 멀리 칸카르 지역은 굴로 유명한 곳이다. 한눈에 봐도 이곳의 조수간만 차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테라스에서 교회안으로 들어오면 몽생미쉘을 상징하는 이런 문장을 볼 수 있다.
내가 가진 팜플렛에는 설명이 없었지만 왕관과 방패는 프랑스 왕가를.... 조가비는 몽생미쉘을 상징할 것 같다.


서쪽 테라스에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이렇게 사원 성당이 나오게 된다.
이곳 신자석에 앉아 득템한 팜플렛을 펼쳐 전자사전을 꺼내가며 열심히 단어를 찾았던 기억이...... 건축용어가 많아서 해석하는데 상당히 애먹었었다. 그 시간에 더 둘러볼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조금 알고서 보는게 더 남는게 아닐까 싶어서... 
사원안 관광 안내소에는 오디오 가이드도 대여해주지만 아시아는 일본어 밖에 지원이 되지 않았다.
이럴때 정말 일본의 국력을 절실히 느낀다.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인이 영어를 가장 못한다지만 사실 일본인들은 부유한 나라에서 태어난 덕분에 영어공부를 안 해도 될 것 같다. 세계 구석구석 관광유적지에는 빠짐없이 일본어 가이드가 다 있으니 말이다.


역시나 크리스마스에는 구유가 빠지지 않고 장식된다.
조촐한 내부에 맞게 조촐한 구유장식이다. (몽생미쉘은 건물밖이 웅장한데 비해, 건물안은 눈이 심심할 정도이다.)


11세기 사진속 교회가 만들어질때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지다가 15세기 보수를 하면서 플랑부아양 고딕 양식을 덧대었다.
한마디로 건축양식이 혼재된 교회라고 할까?
근데 사실...  비 전문가인 나의 눈으로 봤을때는 어디까지가 로마네스크이고 어디부터가 고딕인지 잘 분간이 안간다. ㅎㅎ..

교회내부의 파이프 오르간. 그러고 보니 건반은 어디에 있는 거야?



그리고 성당 바로 옆과 이어진 회랑. 유럽의 교회에는 이런 회랑들이 꽤나 많던데, 도대체 무슨 기능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건물 안에서 수도 생활만 하면 너무 지루할테니 한번씩 밖에 나와서 바람이라도 쐬라는 의미일까?



그리고 회랑의 기둥사이를 따라 걷으면 나오게 되는 구내식당.
구내식당... 굳이 번역하자니 적당한 말이 없네..... 성당내 식당이라고 해야하나?

이곳에서는 과연 어떤 음식이 제공되었을까?  


식당에서 아래층으로 이어진 계단에 보게된 조각.. 미카엘 천사가 오베르 대주교의 머리에 구멍을 내는 장면.
아쉽게도 천사의 얼굴은 손상이 되어 버렸다.

미카엘 : 그러게 진작 내말을 듣지 그랬어?  까불고 말 안들으면 진짜로 다친다. -_-

여기는 게스트홀... 구내식당의 정확히 아래쪽에 위치한 홀이다.
마치 예루살렘에 성지순례를 가는것 처럼 프랑스에 있는 수도승들과 신자들은 이곳 몽생미쉘로 많이 순례를 다녀갔다고 한다. 먼길 다녀오느라 지친 그들을 위해서 이런 홀을 따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성당 뿐만이 아니라 작은 규모의 예배소도 곳곳에 있다. 정식명칭은 예배소가 아니라 (납골당용) 성당 지하실이었던것 같다.



군데군데 낀 이끼와 낡은 벽돌이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증명해준다.



여기는 프랑스 혁명후 감옥으로 사용되면서 죄수들에게 아래에서 음식을 제공받기 위해 설치된 1820년 설치된 도르래 이다. 실제 중세시대에도 이런게 사용되었다는데 그때 사용되던것의 복제품이라고 한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고 비둘기의 안식처가 되어버렸다.


무엇 때문에 파손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안타까운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피에타. 저러니 왠지 더 슬퍼보인다.

여기 몽생미쉘 안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치 중세성안에서 1인칭 슈팅 게임을 하는듯한 기분이 난다. 마침 돌아다니는중 해가 좀 떠서 그렇지, 그렇지 않고 흐리거나 어두운 저녁이라면 어디서라도 뭔가 툭툭 튀어나올것 같은 분위기더라.....


이렇게 모두 돌아다니고 밖으로 나오니 오전에는 잔뜩 흐리고 안개끼던 날씨는 언제 그랬다는듯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시간을 보니 대략 점심시간이어서 사원 바로 주변의 식당으로 들어가 대략 15유로 주고 점심을 시켰더니...
종업원이 물어보지도 않고 외모보고는 바로 "재패니즈 메뉴??" 라고 묻길래.... 살짝 빠직~ -_-+
영어메뉴를 달라고 하고는 가장 무난해 보이는걸 시켰더니.....
햄과 샐러드가 나오는 전식에...
우리나라 요리로 따지자면 순대 국밥쯤 되려나??
순대대신 돼지고기와 내장을 이용한 메인요리..
우.. 나도 한국에서는 순대국밥 정말 맛있게 잘 먹는데.. 아무래도 양념이 우리나라랑 다르다 보니 특유의 돼지 내장냄새가 나서 비위가 썩 나쁘지 않은 나로서도 다 먹지 못하고 남겼던 기억이......
그리고 후식으로 파이와 크림까지 나오더라...
그리고 몽생미쉘 여행을 끝내고서야 알았지만 이곳의 유명한 특산 음식은 바로 양뒷다리 고기와 오믈렛이라고 하더라....
몽생미쉘 가시는 분들은 참고하시고 꼭 지역 특산물을 드시길......


여행 오면 그나마 내가 잘 사는 기념엽서들....
나도 저 기념 엽서처럼 멋진 사진을 남겨보리라 하고 뚝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근데 날씨가 어찌나 추웠던지 밀물이 빠져나가고 물기가 남은 곳은 이렇게 바닷물이라도 얼어 버렸더라.....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진 몽생미쉘.... 그리고 밀물때는 바닷물이 밀려와 천혜의 요새를 제공해줬으리라...
영국과의 백년전쟁당시, 파리마저도 점령당했을때 오히려 영국과 가까운 이곳은 점령당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을 하고 버텼던 곳이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에게는 저항과 독립의 상징인 몽생미쉘...... 아마 파리에 에펠탑이 세워지지 않았더라면 아마 프랑스의 상징은 몽생미쉘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으리라... (사실 에펠탑은 현재까지도 파리시민들이 별로 안 좋아하더라...)


그러고보니 왜 미카엘 대천사는 대주교 오베르에게 몽생미쉘을 세우라고 했던것일까?

그냥 내가 내린 결론이지만...
영국 헨리8세의 이혼문제로 자신이 교회의 수장이 되는 성공회를 세우면서, 엄청나게 많은 영국인들이 개종을 하지 않으면 종교재판에 끌려가 고문과 화형을 당했고, 헨리 8세 이후 최초의 여왕이 된 피의 메리(Bloody Mary)는 종교가 가톨릭이라 또다시 가톨릭으로 개종하라고 수많은 성직자와 귀족, 시민들이 화형장에서 한줌의 연기로 사라졌고...
메리 뒤를 이어받은 엘리자베스 여왕때부터 영국은 영화와 번영의 시기를 누렸지만...
엘리자베스는 성공회 신자라 또다시 가톨릭에서 성공회로 개종하지 않은 신자들이 수만명이나 화형을 당했던지라....
아마 프랑스가 그때 백년전쟁에 패했더라면 영국의 속국이 되면서 프랑스 시민들에게도 개종 문제로 똑같은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까 싶다.
무고한 생명이 잃는걸 방지하기 위해 신은 미카엘 대천사를 시켜서 절대로 점령당하지 못할 곳에 사원을 세우라고 했던것은 아닐까?
.... 하는 그런 생각이 문득 드네.

몽생미쉘은 수도원으로 쓰이는지라 내부가 너무(?) 검소하고 소박해 안은 별로 볼것이 없지만....
이렇게 밖에서 보면 항상 이렇게 경탄을 불러 일으킨다.

사실.. 10시부터 시작되는 여행이 3시에 끝나는지라(퐁토송행 막차가 3시) 이거 5시간만에 충분할까 싶었지만......
내부는 썩 둘러볼게 없어 시간이 많이 남겠구나 싶었는데...... 이렇게 사진을 찍으려면 뚝길을 따라 멀리 걸어나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매우 잘 갔던 기억이......
주변에 일본인 여성 2분이 사진을 찍고 있길래 사진기를 주며 내 사진도 한 장 남겨주고...... ^o^
짜잔~~ 여기가 바로 몽생미쉘 이에요... ^^


시간이 다 되어가서 아쉽게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음... 역시 엽서처럼 정말 엽서사진 같은 사진 남기는건 쉬운일이 아니다... ㅜ.ㅜ

다시와서 아래에서 사원을 보니 정말 깎아지르는 절벽에 이런 건축물을 세웠다는게 기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것 같다.

버스타기 직전 찍었던 관광온 연인들 사진...
뭔가 좀 멋진 사진을 기대하고 찍었으나 아직 사진기 사용이 서툴어 어떻게 설정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찍고보니 허접~ 쩝~ :P

움... 다음번 여행에는 혼자오지 않고 저 연인들처럼 누군가 함께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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